일어났을 때 공기가 꽤 차갑다 싶더니 오늘도 10도였네
어젯밤에 불 피운 거 정리랑 가로등 차단기도 내리고 부지런히 시작한 아침!
예상에 오늘 20km 이상 걸을 것 같아 넉넉하게 8시 전에 출발했다
4일 동안 다리가 완전히 적응해서 이제 배낭 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속도를 높여서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몸에서 열이 나는 것과 달리 공기는 쌀쌀해서 한동안 입김이 났었다



돌이켜 보면 서해랑길은 논과 뻘이 계속 번갈아 나오는 반복 패턴인 것 같아🤔


무지막지한 페이스로 걸어가다가 훈련 중인 군인 아재들도 만났다
재밌는 게,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인사하고 내가 지나쳐 갔는데 1시간 뒤에 내 앞에서 다시 나왔다는 거..ㅋㅋㅋㅋ
그때 군인 중 한 명이 멀리서 "얘들아 쟤 좀 봐!" 하는 것처럼 손으로 가리키며 나를 지목했는데
아우.. 100미터가량 남은 시점에서 시선들이 너무 부담스러워가지고 뒤로 돌아갈까 싶었다ㅋㅋㅋㅋㅋㅋ
1시간 전에 인사한 분과 다시 이야기 나눴는데 차로 이동 중이고 내 동선과 겹친다는 정보를 얻었다
부사관 아조시들도 내 배낭을 보더니 절레절레하시던데 이것도 나름 할만하다구요..? (적응하면)
그렇게 군인들을 뒤로하고 드디어 식당인 장솔가든에 도착!
문제는 11시 오픈인데 걸음이 얼마나 빨랐는지 예상 시각보다 30분을 일찍 왔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우리 집에 1인분 메뉴가 없어요. 그리고 첫 손님이 한 명이면 그날 장사 잘 안 되는데,,, 이따가 11시 30분 넘어서 오실래요?"라고 하셨다
아쉽지만 뭐,,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있지 싶어 다음 식당까지 1시간 더 걸어야 하니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노래 틀고 스틱 쥐고 출발하려는데 사장님이 부리나케 나오시는 게 아닌가
그러고 하시는 말씀이 "지금 식사 준비 중인데 가시려고요?"
음? 오지 말라는 거 아니었나?ㅋㅋㅋㅋ 1인분 메뉴도 없다면서요 사장님🥲
아무래도 행색이 안쓰럽기도 하고 주변에 식당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 배려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덧붙이는 말도 웃겼는데 "다른 데 가려면 가시구요" ㅋㅋㅋㅋㅋㅋ 사장님 완전 츤데레 스타일인 듯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입장을 했고 차려진 상을 보니 왜 1인 메뉴를 안 하시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음식들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몇몇 반찬을 제외하고는 몽땅 해치웠다ㅎㅎ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첫 손님이 혼자라 신경 쓰이실 것 같아 럭키맨의 행운을 나눠드렸으니 장사 잘 될 거라고 너스레도 떨고 나옴
실제로 요즘 운빨 포텐 상태라 조금 나눠줘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흠.. 그러면 안 됐나?ㅋㅋㅋㅋ
여튼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서해랑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독특한 행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해랑길을 비롯해 코리아 둘레길은 리본과 화살표 스티커를 활용해 여행자들의 길을 안내해 주는 안내 체계가 있다
이 분들은 그 안내 체계를 보수 중인 관광공사 직원분들인 건데 우연도 이런 우연이?ㅋㅋㅋ
저분들도 나를 보며 신기해하고 나도 저분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서해랑길 안내 체계가 해파랑길 보다 허술해서 불만인 것도 살짝 토로하고..?ㅋㅋㅋ
보수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날짜에 이 장소에서 만난 게 참 재밌고 신기한 우연이다



그동안 날이 흐렸던 터라 몰랐는데 이날은 여행하며 처음으로 맑아서 유독 덥게 느껴졌다
역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햇님이지
여튼, 더위에 애를 좀 먹고 있었는데 때마침 서늘한 그늘이 가득한 숲을 만났다

아래에 깔린 초록초록한 풀들이 전부 맥문동이라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장항송림이라는 곳이었고 8월엔 맥문동축제로 유명하다고 한다
연보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하면 소나무랑 어우러져서 되게 예쁘긴 하겠다
그리고 또 새롭게 안 사실 하나, 어젯밤에 친구랑 통화하며 장항이 스카워크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네?ㅋㅋㅋㅋ
그렇담 또 안 가볼 수 없지 싶어서 바로 입장료 4,000원 지불!



원래 일정은 오늘 저녁에 군산 도착해서 밥 먹고 주변 구경한 뒤 내일 고군산군도로 가려했는데 시간을 보니 1시도 안 됐네?
그러자 든 생각 '부지런히 걸어가면 한낮에 도착해서 고군산군도로 일몰 보러 갈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도 걸음이 빨랐지만, 목표가 생기자 페이스가 더욱 올라갔다ㅋㅋㅋ 내 다리 칭찬해...



이때가 아마 18km 즈음이었을 텐데 발바닥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뭔가 달리기도 그렇고 걷기도 그렇고 18km에서 자꾸 신호를 받는 건 기분 탓인가🤔


이때가 20km 부근이었나? 휴... 게하까지 2km 남짓 남았고 목표인 3시까지 30분 정도 남았었다

도착했지만, 쉴 시간 따위는 없어..ㅋㅋㅋ 바로 머리 감고 옷 갈아입은 뒤에 군도가는 버스 타야 해!
군산대 앞에서 99번을 타면 고군산군도로 가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일몰이 5시 40분이니 4시 10분 차를 타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미션임파서블 하듯이 탑승에 성공ㅋㅋ

1시간가량을 달려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 중 장지도에 도착!
시간이 5시 20분이라 낙조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실제로 거의 넘어가기 직전으로 보였다


물론 보험을 들어 놨지만 기왕 보는 거 대장봉 꼭대기에 보면 좋으니 트레일러닝 마냥 달리며 산을 올랐다
그러다 중간에 길을 잃었는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그만 발이 미끄러졌다
그 과정에서 두 번 정도 굴렀는데 그 순간엔 이대로 바다까지 구르면 어쩌나 정말 아찔했지...ㅎㅎ..
널브러진 몸을 겨우 앉히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내 앞으로 두 사람이 지나갔다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은 왜 떨어지질 않는지 숨만 가쁘게 내쉴 수 있었고 이대로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지는 건가 싶었다
급한 마음에 계단길이 아니라 암벽+산길 루트로 가는 바람에 사람도 거의 없고 해가 지면 빛도 없어서 정말 곤란 그 자체😬
두 분은 뭐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하하껄껄 웃으며 앞을 지나갔는데 내 자세가 쉬는 사람처럼 보여서 처음엔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다 뭔가 느낌이 쎄-했는지 뒤를 돌아 나를 봤고 숨소리에 신음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내게 물으셨다
저 멀리서 "혹시 다치셨어요?"하고 외치는데 여기서 대답 못 하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에 굳었던 입을 겨우 열고 "예에!"라고 답했다
그러자 부리나케 달려오셔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주시고 가방도 들어주셨는데 다행히 부축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유... 장솔가든에 넘겨준 행운이 좀 많았나?ㅋㅋ 그래도 남아도는 운 덕에 이 분들을 만난 게 아닌가 싶네ㅋㅋㅋㅋㅋ
신기하게도 두 분은 군산 분들이셨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묵는 숙소까지 차로 바래다주셨다
아니었으면 어두운 산길에서 쩔뚝거리며 대장봉을 기어 나와 배차간격 1시간인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1시간 30분을 거쳐 숙소까지.... 으아! 아찔하구먼😂
유쾌한 분들이라 가는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군산에 얼마 전 온천이 터졌는데 거기서 자영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오늘 못 오른 대장봉은 반드시 접수하러 올 테니 군산은 무조건 다시 올 수밖에 없지..!
연말에 오픈한다고 하시니 내년 초나 아니면 아예 내년 연말에 다시 얼굴 뵈러 오는 것도 정말 좋을 듯하다ㅎㅎ



게하에 도착한 뒤 일단 상처부위 전체적으로 소독했다
혹시나 싶어 구급키트를 가지고 온 나, 칭찬해. ㅋㅋㅋㅋ
드레싱 후 약국에서 메디폼도 사서 붙이니 급한 불은 껐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새 시간이 7시 40분이 되었는데 군산 식당들은 이 시간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아까 차 타고 오며 박대구이를 추천받아 먹으러 갔는데 처음 간 곳에서 라스트오더랑 인원수에 걸려 문전박대 당함 ㅜㅜ
하지만 박대구이의 근본. 군산집은 나를 버리지 않았지. 처음부터 여길 갈 걸 괜히 카카오리뷰나 봐가지고,,ㅋㅋㅋㅋ

뭔가 갈치랑 임연수를 섞으면 저런 맛과 식감이 나지 않을까?
정말 고소하고 가장자리 부분은 바삭하면서도 뼈는 잘 발라지고 ㅎㅅㅎ.. 채고였다
엄마 말로는 서울엔 박대구이 잘하는 집이 없다고 그러는데 다루기 어려운 물고기인가?
박대도 박대인데 같이 나온 콩나물국도 정말 진국이라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ㅎㅎ 아픔이 싹- 가시는구만
게하 돌아가는 길에 핼로윈 데코 너무 잘해놓은 바가 있길래 가봤는데 흠... 글쎄 겉만 번지르르했음


근래엔 운동에 빠져서 술을 멀리한 탓에 칵테일을 안 마시며 살았지만,, 한 때 클래식 바텐더를 지망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실망스러운 집이었다
카카오 리뷰에선 사장님 입담이랑 분위기가 좋다고 그러던데 맛은 글쎄.. 네그로니도 별로고 수제맥주도 별로고😶🌫️
결정적으로 손님들이 왜 이렇게 하나같이 직원한테 무례한 건지, 술맛 다 떨어져서 5잔째 마시다 못 참고 나와버렸다
조만간 믹솔로지 가서 정화시키고 와야지..

오늘 진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솔직히 아침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재밌는 에피소드가 빵빵 터졌으니 오늘은 좀 조용히 지나가려나 싶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구요?ㅋㅋㅋㅋ 오늘이 제일 팡팡 터지는 날이었읍니다..
어차피 내일은 많이 걸을 생각도 없었으니 얌전히 이성당에서 빵이나 사서 서울로 올라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