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이론을 통해 본 인간의 학습과 행복
라프코스터의 《재미이론》은 단순히 게임 디자인의 원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학습 방식과 행복 추구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재미'라는 감정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진화적으로 중요한 학습 메커니즘임을 깨달을 수 있다.
게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이 탐구서는 우리가 왜 특정 활동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뇌와 패턴 인식: 재미의 근원
"재미는 그저 학습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코스터의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우리의 뇌는 정보의 빈 곳을 채우고, 패턴을 인식하며, 복잡한 현실을 추상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패턴을 습득하고 숙달할 때 우리는 엔돌핀이라는 보상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재미'라는 감정이다.
우리가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게임이 뇌가 "씹어먹기 좋게 농축한 청크"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서 불필요한 세부 요소를 제거하고 핵심적인 패턴만 남겨 우리가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만든다.
#추상화: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해서 핵심적인 것만 남기는 과정, 여러 개별적인 요소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뽑아내는 것
#청크: 뇌가 정보를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묶어서 정리한 단위
** 추상화는 ‘복잡성 관리’를 위한 것이고 청크는 ‘기억과 인지의 효율성’을 위한 개념이므로 엄연히 다른 것이다.
지루함과 예측 가능성의 균형
라프코스터는 "지루함은 새로운 정보를 원한다는 뇌의 요청"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습득한 패턴에서는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예측 가능성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좋은 게임은 이 두 가지 상충하는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너무 예측 가능하면 지루해지고, 너무 예측 불가능하면 혼란스러워진다.
"부족과 과잉, 지나친 질서와 과도한 무질서, 침묵과 잡음"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모순적 존재라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여 노력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존재인 것 같다.
게임과 현실의 경계
책에서 흥미로운 통찰 중 하나는 "우리 주변은 온통 게임으로 가득하다. 다만 우리가 게임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라는 문장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직업적 도전, 심지어 사랑도 일종의 게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게임처럼 바라보고 있긴 하다.
자기계발을 하며 하나씩 스킬을 탑재하고 시련이라는 퀘스트와 성취라는 보상 등. 인간에게 있어 가장 도전적이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패의 대가가 크지 않은 안전한 환경에서 중요한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화적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실제 상황에서의 실패는 생존을 위협할 수 있지만, 게임에서의 실패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임에선 실패해도 버튼 하나 딸깍 하면 그만이지만 내 삶에서 실패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웬만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은 없는 것 같다. 그 순간엔 두렵고 힘들겠지만, 결국 그 좌절의 경험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명언도 있는 게 아닐까.
한편, 스포츠를 비롯한 많은 전통적 게임들이 원시 인류의 생존 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활쏘기, 달리기, 창던지기와 같은 활동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직접적인 생존 가치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뇌는 이러한 활동에서 재미를 느낀다.
이는 우리의 즐거움이 진화적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게임과 예술, 그리고 책임
코스터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예술과 모든 엔터테인먼트는 수용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며 도전한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는 "형태가 다른 게 아니라 강도가 다른 것"이다.
나 역시 엔터테인먼트와 예술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두 가지는 모두 아래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너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너는 이것을 어떻게 느끼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코스터는 창작자의 책임을 강조한다. "창작자의 소명은 사람들에게 변화에 적응할 도구를 제공하여... 인류가 계속 진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쉬운 엔터테인먼트"에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고, 도전과 학습을 촉진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근래들어 사람들은 더욱 쉬운 것, 확실한 것, 편한 것을 찾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어찌보면 진화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도태되어 가고 있는 과정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는 건 결국 어려운 것, 불확실한 것, 불편한 것을 추구한 사람들일테고 언젠가 무너졌을 인류는 그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약하지 않을까.
지속적인 도전과 학습의 중요성
라프코스터의 재미이론은 게임 디자인을 넘어 우리 삶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가 행복하고 활기찬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도전과 학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책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린애 같다는 것 또한 마음 상태의 하나로, 계속 배움을 탐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 바로 “호기심”이라는 내용의 영상을 봤던 게 생각이 난다. 코스터 역시 이와 같은 결의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AI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예측할 수 없게 변해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재밌는 일이기도 하지만 참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라면 더더욱. 하지만 배워야 하고 해야만 한다.
나이가 들며 뉴런과 뉴런 간의 연결을 잃고 세상이 노이즈로 가득 차 희미해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다룸으로써 정신을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겠다.
결론: 게임과 학습, 그리고 삶
《재미이론⟫이 다루는 내용은 단순히 게임 디자인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인간의 학습 방식, 행복의 본질,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통찰을 담고 있다. 재미는 학습이고, 학습은 성장이며, 성장은 삶의 핵심이다.
코스터는 이러한 말도 했다. "내 생각에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마치 엄지가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보았던 것만큼이나 진화적으로 중요한 장점이었을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더 적응력 있는 존재로 만드는 근본적인 동력인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것에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가질 줄 알아야 하겠고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재미”라는 요소를 기획 분야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를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드러난 ‘이렇게 하면 재미있어요’를 다루기 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들을 많이 다루어 어렵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재미의 본질, 청크, 추상화, Grok(꿰뚫어 알다), 재미에 있어 다양성과 정교함 사이의 관계 등 몰랐던 지식들을 채울 수 있어 굉장히 유익했고 책장에서 종종 꺼내어 읽을 것 같다.
글에서 계속 이야기 하였지만, 이 책은 게임 디자인 분야를 다룸에도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을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게임 업계에 관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다.
요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내용들이 꽤 많아 더욱 흥미롭게 읽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사고가 확장되고 연결되는 경험에서 나는 또 한 번 재미를 느끼고 있으며 이 즐거움은 내가 살아가며 꾸준히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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